아이폰을 손에서 놓은 밤, 더 나은 아침이 시작됐다

요즘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산만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SNS, 쇼츠를 몇 개만 본다는 게 늘 계획보다 길어졌고, 잠자리에 누운 몸은 쉬고 싶은데 머리는 계속 깨어 있었다. 그래서 아주 단순한 결정을 하나 했다. 잠자리에 들 때 아이폰을 거실에 두고 오기로 한 것이다.

며칠을 그렇게 해보니 변화는 생각보다 분명했다. 수면시간이 늘어났고, 무엇보다 수면의 질이 달라졌다.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으니 끊임없이 타인의 말과 음악, 영상에 노출되지 않아도 됐고, 초단위로 바뀌는 쇼츠의 주제들을 따라가지 않아도 됐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밖이 아니라 안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내 마음의 소리를 또렷하게 듣는 느낌이었다.

물론 처음엔 심심했다. 손이 자꾸 허전해서 무언가를 찾게 됐다. 대신 집에 있던 아주 오래된 기기를 꺼냈다. 10년 전에 구입한 아마존 Fire HD 8이었다. 속도는 느렸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웹브라우저 크롬, 리디북스, 그리고 내가 생산한 문서를 볼 수 있는 옵시디언 정도가 전부였다. 오히려 그 제한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침대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내가 쓴 문서들, 블로그에 정리해둔 글들, 그리고 사놓고 오랫동안 밀려 있던 책들. 자기 전까지 내 생각과 저자의 생각을 오로지 내 목소리로만 읽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누군가가 골라준 자극적인 영상 대신, 내가 선택한 문장들만 남은 시간이었다.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자극적인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으니 각성 효과가 줄었고, 내 몸의 리듬에 맞는 수면 시간이 자연스럽게 확보됐다. 텍스트를 읽으며 편안한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스르륵 잠이 들었다. 기절하듯 잠드는 게 아니라, 잠으로 넘어가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심심함’이었다. 그 심심함이 나를 한 번이라도 더 내 몸을 돌보게 만들었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늘 우주 단위나 지구적 위기를 함께 겪게 되는데, 그것만 끊어도 물 한 잔을 더 챙기고, 딸들의 이불을 한 번 더 덮어주며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쓸데없는 곳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결과적으로 자기 전의 시간에 ‘나’를 마주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간이 정기적으로 생겼다. 아이폰을 쥐고 우주인의 지구 침공을 걱정하다가 기절하듯 잠드는 일은 사라졌다. 저녁 9시부터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 훨씬 편안해졌고, 쇼츠에 빠져 새벽 1시에 잠들던 날들도 줄어들었다.

그 변화는 아침으로 이어졌다. 기상과 운동이 한결 수월해졌고, 그 결과로 나와 가족들에게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주 작은 습관 하나가 하루의 리듬을, 그리고 사람의 태도를 바꾼 셈이다.

아직은 실험 단계다. 조금 더 유지해보고, 이 방식을 좋은 습관으로 정착시켜보려 한다. 침대에서 무엇을 내려놓느냐가, 결국 하루를 어떻게 시작할지를 결정한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속도와 방향을 모두 잃지 않는 법, 균형?!

운동을 하면서 신기한 걸 하나 깨달았다. 예전에는 늘 발끝만 보고 걸었다. 내 몸의 상태, 호흡, 땅의 질감 같은 것들을 느끼면서 “오늘은 이 정도면 됐지” 하며 멈췄다. 반대로 어떤 날은 목표 거리만 바라봤다. “저기까지만 가면 끝이야.” 그런데 그런 날은 이상하게 더 힘들었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에너지를 다 써버리다 보니, 며칠 지나지 않아 지쳐버렸다.

오늘은 조금 달랐다. 걸으면서 동시에 두 가지를 봤다. 멀리 있는 목표와 내 발끝. 마음속으로는 목표 거리를 그리며 페이스를 조정했고, 동시에 내 몸의 반응과 노면의 상태를 살폈다. 신기하게도 이 두 시선을 함께 가져가니까 걸음이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몸의 균형도, 마음의 균형도 같이 잡히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일도 그렇다. 내 컨디션만 보며 살면, 조금만 피곤해도 “이 정도면 됐지” 하며 멈춘다. 반대로 목표만 보고 달리면, 내 자원을 다 써버리고 오래 가지 못한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비슷하다 — 금세 지치고, 멀리 가지 못한다.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이었다.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동시에 보는 일, 내 속도와 목표를 함께 조율하는 일. 빠르게 나아가려는 욕망(속도)과 올바른 방향을 찾으려는 이성(방향), 그 두 긴장이 만나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균형이었다. 속도와 방향,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고민될 때는 둘 다. 그 둘의 줄다리기 속에서 결국 균형이라는 감각이 태어난다. 인생이든 운동이든, 결국 그건 다르지 않다.

결국 답은 단순했다. 내 페이스 유지하기. 너무 계산하지도, 너무 감정에 휩쓸리지도 말기. 가끔은 그냥 음악에 몸을 맡기며 걷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나는 늘 말을 삼켰고, 그 삼킨 말이 나를 삼켰다.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니었다. 그땐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있는 척, 아는 척, 다른 척. 그렇게라도 해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은 그냥 나답게 보이는 게 두려웠던 거다. 어설퍼 보일까 봐, 모자라 보일까 봐. 그래서 더 그럴듯한 나를 흉내 냈다.

말 한마디를 꺼낼 때마다 상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걸 먼저 읽었다. 그 표정 하나에 내 마음을 접고, 다음엔 더 조심히 말하려 애썼다. 결국 말은 사라지고, 대신 비루함만이 쌓였다. 나는 늘 말을 삼켰고, 그 삼킨 말이 나를 삼켰다.

사실 말 못했던 게 아니라, 두려워서 입을 닫았던 거다. 틀릴까 봐, 미움받을까 봐, 내 진심이 가볍게 취급될까 봐. 그렇게 멀쩡히 웃으면서, 속으로는 매일 숨죽였다. 그러다 보니 말의 근육은 약해지고, 마음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그랬구나. 사실 조금 경박해도 괜찮았는데. 어차피 인생은 그 가벼움 속에서 굴러가니까. 남은 50년도 그렇게 살 순 없지. 하고 싶은 말은 하자!

머릿속이 정리되면 세상도 정리된다

일주일이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제에서야 공동구매 제안서의 1차 완성을 마쳤다. PPT 열몇 장을 만드는 데 며칠이 걸릴 리는 없지만, 문제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였다. 단순히 “같이 팔아봐요, 수수료는 이렇습니다” 같은 문장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강릉하얀감자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끓이고 팔고 있는지, 그리고 이 음식이 누군가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제안서를 쓰는 일은 ‘팔기 위한 준비’라기보다 ‘내 사업을 이해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판매를 위한 문서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그 안에는 브랜드의 철학, 제품의 본질, 그리고 나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가 빠질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몸으로 부딪히며 감자탕을 끓여왔지만, 정작 그 과정을 ‘언어로 설명’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강릉하얀감자탕이 단순한 냉동식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식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음식’이라는 말을 꺼내기까지, 마음속 정리가 필요했다.

리브랜딩 과정을 함께 하면서 제안서의 뼈대도 조금씩 잡혔다. 처음에는 그냥 가격표처럼 보이던 문서가 점점 한 편의 이야기처럼 바뀌었다. 강릉에서 시작된 한 냄비의 서사, 감자탕 김사장이 일하는 방식, 그리고 고객과 함께 만들어온 신뢰의 기록들. 이 모든 걸 다시 꺼내어 구조화하다 보니, 어느새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것들이 현실의 프레임으로 정리되었다. 최종적으로 17페이지. 표지까지 포함된 그 파일을 닫는 순간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냥 제안서가 아니라, 지난 몇 년의 나를 정리한 보고서 같았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건 그 다음이었다. 머릿속에서 사업의 구조를 재정리하자, 실제 세상도 따라 정리되기 시작했다. 시설의 동선이 단순해졌고, 불필요한 재고가 줄었고, 인력의 역할이 명확해졌다. 마치 생각의 회로가 현실의 시스템으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요즘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이건 정말 ‘AI 덕분’이었다. 혼자라면 수개월 걸릴 일이었다. 각 분야의 AI부장님들이 — 기획, 디자인, 리서치, 카피, 분석 — 각자의 자리에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제안서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촉매제였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논리의 틈을 메워주고, 흩어진 생각을 구조로 만들어줬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생각이 정리되니 마음이 정리되고, 마음이 정리되니 주변 환경까지 정돈된다는 사실이었다. 제안서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 내 삶을 정리하는 일일 줄은 몰랐다. 숫자와 효율로 시작한 문서 작업이, 결국 나의 일, 브랜드, 삶 전체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부터는 이 제안서를 들고 인플루언서와 판매처를 찾아간다. 하지만 마음은 다르다. 그저 판매를 제안하러 가는 게 아니라, 한 그릇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러 가는 마음이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AI와 함께 일하는 지금, 생각과 현실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머릿속의 정리가 현실의 구조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단지 기술의 영향일까, 아니면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사고의 본능이 다시 깨어나는 걸까.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생각이 움직이면 삶도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움직임의 방향을 천천히 따라가보려 한다. 정답을 찾기보다, 변화의 흔적을 기록하면서.

진짜 스트렝스, 나를 다루는 기술

1차 100일 계획으로 생존 운동을 시작헀다. 계획은 잘 지켜지고 있고 몸은 가벼워졌지만, 오늘 문득 내 안의 패턴 하나를 발견했다. 더 나아갈 수 있는데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그 안에서 멈춘다. 2km를 달리는 게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3km로 가지 않는다. 기준을 달성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오늘도 했다.” 하지만 그건 성장의 증거가 아니라 안심의 주문이었다.

며칠 전 나이키 코치 김은서의 영상을 봤다. 그는 스트렝스를 ‘무게를 드는 능력’이 아니라 ‘단단한 상태’라고 했다. 운동은 몸의 훈련이 아니라 나를 다루는 기술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기준을 세우는 건 필요하지만, 그 기준 안에 머무는 건 퇴보다. 나는 늘 숫자와 기록으로 나를 관리했다. 불안할 때마다 숫자에 기대며, 그 안에서 안전해졌다. 결국 나를 증명하려는 운동이 나를 묶고 있었던 셈이다.

김 코치는 ‘65%의 법칙’을 말했다. 힘을 빼야 중심이 생긴다고.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나는 늘 100%로 버텼다. 사실은 완벽하려던 게 아니라, 실패하지 않으려고 그랬다. 그래서 더 큰 시도를 피했다. 부족한 결과보다 멈춘 내가 더 안전하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그건 내 한계를 관리하는 방식이지, 성장의 방식은 아니었다. 요즘은 다르게 해본다. 완벽을 내려놓고 꾸준함에 집중한다. 여유를 남겨두면 다시 하고 싶어진다. 힘을 덜 쓸수록 오래 간다.

운동을 하며 근육이 아니라 마음의 패턴을 봤다. 나는 ‘더 나은 나’보다 ‘지금의 나’를 유지하는 데 익숙했다. 그걸 알아차린 게 이번 두 달의 가장 큰 수확이다. 이제 운동을 할 때마다 묻는다. “나는 지금 힘을 쓰고 있나, 아니면 힘을 이해하고 있나?”

2km든 3km든 이제 상관없다. 중요한 건 오늘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 어제보다 조금 더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 더, 몸을 단련한다는 건 결국 사고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몸이 익숙해질수록 마음의 저항이 줄고, 새로운 사고의 회로가 만들어진다. 그 회로가 나를 다시 설계한다. 오늘의 땀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내 생각을 다시 짜는 연습이었다.

다시, 혼자서 시작합니다

여러 사정 끝에 저는 다시 1인 기업으로 돌아왔습니다. 감자탕 일을 기획부터 생산, 포장, 판매, 고객 응대까지 혼자 맡아 하게 되었고, 말 그대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누군가는 “이미 5년이나 해온 일인데 뭐가 다르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제 입장에서는 사실상 재창업에 가까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일을 더 빨리 늘리는 것보다, 어떻게 해야 오래 갈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면 감사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단일 메뉴로 10만 그릇 이상을 판매했고, 누적 리뷰 평점도 4.9/5.0을 기록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잘 팔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제 마음에 더 크게 남아 있는 건 “다시 선택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음식을 다시 주문해주셨다는 건, 그만큼 신뢰를 쌓아왔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 신뢰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다만 환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더 넓은 범위에서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감자탕이 어떤 음식인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를 스스로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가장 미뤄왔던 일이 바로 브랜딩과 구조 정리였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당장 돌아가는 일부터 처리하느라 뒤로 미뤄두었던 숙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잘 꾸며진 결과물을 보여주기보다는, 1인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제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를 기록해두고 싶었습니다. 시작은 초라합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도 많고, 시행착오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AI를 도입해 업무를 다시 구조화해보고, 감자탕 운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공부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생각이 쌓이고 있습니다. 아주 희미하지만, 방향성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AI를 쓰기 시작하면서 느낀 건, 혼자 일하더라도 혼자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자동화나 폭발적인 생산성보다, 제게 더 큰 도움은 생각을 정리해주고 다른 관점을 던져주는 동료 같은 존재를 곁에 두게 되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혼자서 결정해야 하는 순간마다 판단의 근거를 점검하고, 선택의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지금의 저에게는 꽤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대단한 해답을 주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 혼자 사업을 하거나 다시 시작을 고민하는 분들께 작은 참고 자료나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일하다 보면 정답 없는 질문을 붙잡고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아지는데, 그럴 때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아니구나” 하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기록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AI를 사업에 도입해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께도, 혼자 일하는 사람이 실제로 겪은 시행착오와 고민을 그대로 남긴 이 기록이 조금이나마 현실적인 힌트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 역시 다른 사람들의 기록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앞으로 이 공간에는 감자탕 김사장이 1인 기업으로 다시 살아남기 위해 고민한 흔적들, AI와 함께 일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낀 생각들을 차분히 쌓아가려 합니다. 이 기록들이 언젠가 누군가의 책상 한켠에 조용히 놓여 있다가, 필요할 때 꺼내볼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에,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내고 다시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이 서로에게 작은 연결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강릉에서, 감자탕 김사장

‘아빠, 공부는 왜 하는거야?’

 

“아빠 공부는 왜 하는 거야? 글쓰기는 왜 연습해야 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첫째가 물었다. 순간 대답이 막혔다. 너무 단순한 질문인데, 너무 본질적이었다. 내 입에서 나올 말이 ‘공부해야 나중에 좋은 일을 하지’ 따위가 되면 그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마음속에 늘 붙잡고 있는 문장을 떠올렸다. “생각하는 대로 살래, 아니면 살아지는 대로 생각할래?” 이게 내가 공부하고 글을 쓰는 이유다. 세상은 매일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늘 흔들린다. 그 속에서 내가 뭘 느끼고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잊지 않으려면 생각을 ‘언어로 붙잡는 연습’이 필요하다. 공부는 그걸 돕는 도구고 글쓰기는 그 생각을 다듬는 과정이다.

아직 어린 딸에게 이런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공부는 머리를 채우는 게 아니라 마음을 세우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글쓰기는 그 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연습이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신이 뭘 느끼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생각을 써본 사람만이 자기 생각을 믿을 수 있고, 그걸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생각대로 살아가게 된다고.

아마도 나는 지금 당장이 답을 완벽히 설명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조금씩 자라가며 나 역시 조금씩 말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아빠가 왜 공부하는지, 왜 글을 쓰는지를 보여주는 건 아마 말보다 행동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짧은 글 한 편을 쓴다. 언젠가 딸이 나의 오래된 글들을 읽으며 “아, 그래서 아빠는 그렇게 살았구나”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작지만 확실하게, 시작의 회로를 켜는 방법

러닝을 하며 들은 오디오 캐스트에서 ‘2분 법칙’이란 말을 다시 들었다.
의지력이 아니라 뇌의 작동 원리를 이용해 미루는 습관을 없애는 방법.
시작을 터무니없이 작게 만들어 뇌의 저항을 줄이는 것,
팔굽혀펴기 두 개, 책 두 쪽, 명상 두 분 — 그 단순한 원리가 의외로 깊게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나는 큰 목표를 세우고, 그 무게에 눌려 멈추는 일이 많았다.
실행을 미룬 게 아니라, 패배를 먼저 준비하는 습관 속에 있었던 것이다.
작게라도 시작했다면 달라졌을 일들.
결국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시작의 회로’를 여는 일이라는 걸,
달리며 몸으로 느꼈다.

뇌는 새롭고 부담스러운 일을 위협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2분의 시작은 그 경계를 속인다.
90초만 집중해도 뇌는 저항을 멈추고 실행 모드로 전환된다.
그 구조는 유튜브 쇼츠 같은 짧은 영상에도 작동한다.
부정적인 몰입에 빠지지 않으려면, 뇌의 회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재배선해야 한다.
작은 시작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 그게 2분 법칙의 진짜 힘이다.

또 한 가지 남은 문장은 “환경을 설계하라”였다.
최근 나는 일과 생활의 경계를 흐려 놓고 있었다.
아이들이 노는 옆에서 노트북을 켜거나, 틈날 때마다 업무 메모를 적는 식으로.
이제는 그 시간을 명확히 나누려 한다.
가족의 시간엔 완전히 함께 있고, 일할 땐 낭비 없이 몰입하기.
그게 내 삶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그리고 달리던 그날,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크지만, 내 능력의 블록은 충분히 모아야 나를 만든다.
한 조각으로 내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2분 법칙은 바로 그 조각을 쌓는 일이다.
작게 시작해 매일 반복하는 순간,
뇌가, 삶이, 나 자신이 조금씩 단단해진다.

김사장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며

감자탕 김사장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식당의 간판 뒤에 있는 사람, 그가 매일 선택하고 버티는 과정이 결국 브랜드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이유가 되고, 사람은 서사가 된다. ‘하얀감자탕’이란 이름 아래 김사장이 어떤 판단을 내려왔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내 삶의 방향도 조금은 또렷해질 것 같다.

지금 김사장은 다시 창업 수준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단순한 인테리어나 메뉴 개편이 아니라, 가게를 완전히 새로 세우는 일이다. 이번에는 효율적인 리뉴얼 오픈을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재료 발주부터 고객 피드백 정리, 콘텐츠 기획까지 — 1인 기업 현장에서 가능한 범위를 실험해보려 한다.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하는 사고의 보조 장치’로 다루는 방식이다. 현장의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데이터와 도구를 활용해 새로운 지속의 형태를 만드는 시도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식당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로그이자 변화의 기록이다.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일주일 단위의 스토리 전개를 시도하고, 그 결과를 블로그에 축적할 예정이다. 필요하다면 유튜브로도 이어질 것이다. 목표는 조회수가 아니라 맥락의 지속이다. 한 사람의 일,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또 한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브랜드와 삶이 함께 자라나는 과정을 남기고 싶다.

새벽러닝 60일, 마음이 먼저 달라지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린 지 어느덧 60일이 넘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체력이 붙는 건 당연한 결과였지만,
요즘 들어 주변 사람들이 내 얼굴빛이 달라졌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 변화가 몸보다 마음에서 먼저 시작된 것임을 느낀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거의 바닥이었다.
의욕도, 자신감도 없었고 하루를 버티는 일조차 벅찼다.
그저 살아내기 위해 억지로 움직이던 시기였다.
하지만 하루, 이틀, 그리고 한 주가 지나면서
달리기 후에 밀려드는 묘한 안정감과
“그래,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작지만 확실한 확신이 생겼다.
어쩔 수 없다에서 할 수 있다로 바뀌는 이 작은 전환이
내 삶 전체의 리듬을 바꾸기 시작했다.

러닝화가 닳을수록 나도 함께 단단해졌다.
땀으로 쌓아올린 변화는 누가 빼앗을 수도, 단숨에 사라질 수도 없다.
그건 내 안에 새겨진, 물리적인 근육이자 정신의 근력이다.
매일 조금씩 전진하며 내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눈으로, 몸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제 남은 40일, 100일의 완성을 향해 달려간다.
마지막 날의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땐 더 멀리, 더 오래 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스스로를 믿고 다시 달릴 줄 아는 내가 되어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