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 for: 초보아빠

아이의 졸업식 일주일전, 처음으로 어른의 눈물이 나왔다

어릴적 졸업식에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내 졸업식도, 누군가의 졸업식도 그랬다. 어른들은 “이럴 때 우는 거야” 하며 눈시울을 훔쳤지만, 나는 늘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는 쪽이었다. 감격보다는 의례처럼 느껴졌고, 왜 저렇게까지 감정이 올라오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첫째 딸의 졸업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식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눈물이 난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싶다가도, 그보다는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의 밀도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한 번에 보이기 시작했다. 태어났을 때의 얼굴, 처음 걷던 순간, 말이 서툴던 시기, 유치원에 입학하던 날,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3년의 시간들. 아이는 하루하루 자라났을 뿐인데, 어른인 나는 그 모든 장면을 기억이라는 한 덩어리로 동시에 보고 있다. 어른의 눈으로, 어른의 경험으로, 어른의 기억으로 한 아이의 시간을 한꺼번에 마주하는 일. 아마 그게 감격이라는 감정의 정체일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또 수도꼭지 터졌네” 하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나도 같이 웃고 넘겼을 이야기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다르다. 3월에 있을 입학식이 벌써부터 걱정되고, 괜히 마음이 앞서간다. 초보 아빠의 전형적인 증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이 감정만큼은 분명하다. 딸아이가 그저 고맙고, 사랑스럽다. 잘 자라줘서 고맙고,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 졸업식은 아이의 끝이 아니라 어른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면, 아마 그 말은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이번 졸업식에서는 아마, 나도 어른들처럼 조용히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눈물로.

아이에게는 모든 순간이 처음이다, 내 경험은 잠깐만 조용히

오늘 아침은 유난히 정신이 없었다. 출근 시간이 늦어졌는데 아이들은 장난감을 늘어놓고 옷은 입을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지다 보니, 둘째에게 건넨 말에 감정이 실려버렸다. 말로 때렸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소리를 질렀다기보다는, 내 안의 조급함이 그대로 얹혀 나간 말이었다.

다시 숨을 고르고 아이를 달랬다. 결국 어린이집에는 웃는 얼굴로 데려다주긴 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없었던 아침처럼 마무리됐다. 하지만 가게로 오는 차 안에서 한숨이 길게 나왔다. 방금 전의 장면이 계속 떠올랐고, 내 말투 하나에 아이가 느꼈을 감정이 뒤늦게 마음을 건드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던진 말에 감정이 실렸느냐의 여부가 핵심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감정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보다, 그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닿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쪽에 가까웠다. 말은 던졌는데, 그 말이 과연 어디에 머물렀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것 같다. 내가 던진 말이 딸들의 감정의 외골격 위로 떨어져 흘러내리느냐, 아니면 비록 아주 가느다란 한 줄기라도 마음속으로 스며들며 공감으로 남느냐의 차이다. 같은 말이어도, 외부를 튕겨내는 외골격 위에서 미끄러지듯 사라질 수도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음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편에 서서 던지는 말과, 같은 자리에 앉아 공감과 다정함을 유지한 채 건네는 말은 정말 다르다. 전자는 ‘꼰대의 말’로 남기 쉽고, 후자는 느리더라도 변화를 만들어낼 여지를 남긴다.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건 결국 말의 크기가 아니라, 말이 건네지는 위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실은 늘 이상적이지 않다. 애들을 깨우고, 먹이고, 다시 깨워서 옷 입히고, 등원시키는 정신없는 아침 상황에서 매번 좋은 판단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 순간순간에 감정을 완벽히 분리해내는 건 아직 초보 아빠인 나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필요한 건 완벽한 훈육이 아니라, 하루에 30분이라도 아이들을 진심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말로 가르치기보다, 태도를 다시 맞추는 시간 말이다. 그렇게 하루에 30분씩이라도 아빠 연습을 진심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후에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덩킨도넛에 가야 할 것 같다. 도넛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아빠도 계속 배우고 있다”는 마음만은 전하고 싶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단순히 아이를 바르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어른으로 다시 훈육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일인 것 같다. 아이를 가르친다고 생각했던 하루가, 사실은 내가 다시 배우는 하루였다. 꼰대예방 주사…. 좀 아프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