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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졸업식 일주일전, 처음으로 어른의 눈물이 나왔다

어릴적 졸업식에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내 졸업식도, 누군가의 졸업식도 그랬다. 어른들은 “이럴 때 우는 거야” 하며 눈시울을 훔쳤지만, 나는 늘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는 쪽이었다. 감격보다는 의례처럼 느껴졌고, 왜 저렇게까지 감정이 올라오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첫째 딸의 졸업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식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눈물이 난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싶다가도, 그보다는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의 밀도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한 번에 보이기 시작했다. 태어났을 때의 얼굴, 처음 걷던 순간, 말이 서툴던 시기, 유치원에 입학하던 날,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3년의 시간들. 아이는 하루하루 자라났을 뿐인데, 어른인 나는 그 모든 장면을 기억이라는 한 덩어리로 동시에 보고 있다. 어른의 눈으로, 어른의 경험으로, 어른의 기억으로 한 아이의 시간을 한꺼번에 마주하는 일. 아마 그게 감격이라는 감정의 정체일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또 수도꼭지 터졌네” 하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나도 같이 웃고 넘겼을 이야기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다르다. 3월에 있을 입학식이 벌써부터 걱정되고, 괜히 마음이 앞서간다. 초보 아빠의 전형적인 증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이 감정만큼은 분명하다. 딸아이가 그저 고맙고, 사랑스럽다. 잘 자라줘서 고맙고,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 졸업식은 아이의 끝이 아니라 어른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면, 아마 그 말은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이번 졸업식에서는 아마, 나도 어른들처럼 조용히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눈물로.

아이에게는 모든 순간이 처음이다, 내 경험은 잠깐만 조용히

오늘 아침은 유난히 정신이 없었다. 출근 시간이 늦어졌는데 아이들은 장난감을 늘어놓고 옷은 입을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지다 보니, 둘째에게 건넨 말에 감정이 실려버렸다. 말로 때렸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소리를 질렀다기보다는, 내 안의 조급함이 그대로 얹혀 나간 말이었다.

다시 숨을 고르고 아이를 달랬다. 결국 어린이집에는 웃는 얼굴로 데려다주긴 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없었던 아침처럼 마무리됐다. 하지만 가게로 오는 차 안에서 한숨이 길게 나왔다. 방금 전의 장면이 계속 떠올랐고, 내 말투 하나에 아이가 느꼈을 감정이 뒤늦게 마음을 건드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던진 말에 감정이 실렸느냐의 여부가 핵심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감정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보다, 그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닿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쪽에 가까웠다. 말은 던졌는데, 그 말이 과연 어디에 머물렀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것 같다. 내가 던진 말이 딸들의 감정의 외골격 위로 떨어져 흘러내리느냐, 아니면 비록 아주 가느다란 한 줄기라도 마음속으로 스며들며 공감으로 남느냐의 차이다. 같은 말이어도, 외부를 튕겨내는 외골격 위에서 미끄러지듯 사라질 수도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음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편에 서서 던지는 말과, 같은 자리에 앉아 공감과 다정함을 유지한 채 건네는 말은 정말 다르다. 전자는 ‘꼰대의 말’로 남기 쉽고, 후자는 느리더라도 변화를 만들어낼 여지를 남긴다.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건 결국 말의 크기가 아니라, 말이 건네지는 위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실은 늘 이상적이지 않다. 애들을 깨우고, 먹이고, 다시 깨워서 옷 입히고, 등원시키는 정신없는 아침 상황에서 매번 좋은 판단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 순간순간에 감정을 완벽히 분리해내는 건 아직 초보 아빠인 나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필요한 건 완벽한 훈육이 아니라, 하루에 30분이라도 아이들을 진심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말로 가르치기보다, 태도를 다시 맞추는 시간 말이다. 그렇게 하루에 30분씩이라도 아빠 연습을 진심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후에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덩킨도넛에 가야 할 것 같다. 도넛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아빠도 계속 배우고 있다”는 마음만은 전하고 싶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단순히 아이를 바르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어른으로 다시 훈육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일인 것 같다. 아이를 가르친다고 생각했던 하루가, 사실은 내가 다시 배우는 하루였다. 꼰대예방 주사…. 좀 아프네. ㅎㅎ

Heavy Sinks, Light Flies — AI 시대, 판단의 주도권은 조직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연속된 글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히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일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가 분명하게 바뀌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조직이 판단하고 개인이 실행했다면, 이제는 개인이 판단하고 조직은 그 판단을 따라가지 못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그 어긋남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 이 연재의 출발점이었다.

송길영 박사가 오래전부터 던져온 질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변화는 늘 기술에서 시작되지만, 실제로 무너지는 것은 구조이고, 가장 늦게 바뀌는 것은 사고방식이라는 문제의식이다. 다만 이 연재에서는 그 논의를 학술적 언어나 거시 담론이 아니라, 현업과 1인기업, 실무자의 시선으로 다시 풀어보고 싶었다. 회의실이 아니라 작업대에서, 조직도가 아니라 실제 판단과 실행의 순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비의 축은 자연스럽게 명확해졌다. 규모와 위계, 역할 분업을 전제로 움직이는 레거시 조직과, 판단을 중심에 두고 AI를 도구로 삼아 빠르게 실행하는 AI 슈퍼개인. 이 둘의 차이는 성실함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결정이 어디에서 끝나는가의 차이다. 누가 더 많이 일하느냐보다, 누가 더 빨리 결정하느냐가 성과를 가르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감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 연재는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관찰된 변화의 방향을 차분히 묶어두는 시도에 가깝다. 조직이 느려지는 이유, 개인이 빨라지는 조건, 고용에서 협업으로 이동하는 흐름, 그리고 자동화의 시대에 끝까지 인간이 붙잡아야 할 영역까지. 각각은 흩어진 생각이었지만, 글로 쓰는 과정에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개의 글을 적는 사이 정리된 하나의 생각을 아래 기록해 둔다.


Heavy Sinks, Light Flies – 1~5편을 묶은 완성편

AI 시대, 일의 주체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AI 시대를 살면서 요즘 가장 자주 떠오르는 생각은, 일의 주체가 분명히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는 조직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개인들이 세상의 흐름을 움직이고 있다. 이 글은 그런 변화의 한가운데를 정리한 기록이다. 단순히 AI 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일하는 방식과 사고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 앞에서 개인은 어떤 위치에 서게 되는지를 짚어보고 싶었다.

과거에는 ‘크다’는 것이 곧 ‘안정적이다’라는 의미였다. 사람 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었고, 규모 자체가 신뢰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조직이 클수록 느려지고, 느려질수록 판단은 늦어진다. AI가 실시간으로 판단과 실행을 돕는 시대에, 레거시 조직의 무게는 더 이상 안전망이 아니라 마찰로 작동한다.

중요한 점은 이 무거움이 개인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사람보다 구조의 관성에 있다. 레거시 조직은 여전히 위계, 보고, 승인이라는 절차 위에 서 있다. 하지만 AI가 초 단위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환경에서, 이 절차는 안정이 아니라 지연 장치가 된다. AI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회의를 통해 하루를 쓰는 구조는 이미 시대와 어긋나 있다.

AI가 만들어낸 가장 큰 변화는 판단 속도의 단축이다. 이제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누가 더 많은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느냐다. 과거에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졌다면, 지금은 판단의 밀도와 실행의 타이밍이 권력이 되었다. 그러나 레거시 조직에서는 이 판단이 위로는 승인, 옆으로는 조율, 아래로는 보고로 분산되며 끊임없이 늦어진다. 그 사이 시장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반면 AI를 활용하는 개인, 이른바 AI 슈퍼개인은 판단의 단계를 압축한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요약해 실행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혼자서 완결할 수 있다. 과거라면 부서 단위 협업이 필요했던 일들이 이제는 개인의 도구 조합으로 끝난다. 더 이상 사람 수가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제 기준은 ‘한 사람이 얼마나 깊고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가’로 바뀌었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진다. 레거시 조직은 위계를 유지하기 위해 보고서, 회의, 평가, 인사 같은 ‘조직을 위한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일의 본질은 시장과 고객에 있지만, 에너지는 내부 운영으로 흘러간다. 반면 AI 슈퍼개인은 결과만 본다. 시장의 반응이 곧 평가이고, 성과는 곧 생존이다. 그래서 그는 시스템을 유지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연결하고, 불필요하면 즉시 덜어낸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분명해진다. AI 슈퍼개인이 빠른 이유는 혼자 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판단이 개인에게 귀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판단이 위로 올라가야 움직이지만, 개인은 판단이 끝나는 즉시 실행으로 넘어간다. 이 작은 차이는 시간이 누적될수록 큰 격차가 된다. AI 슈퍼개인은 회의 대신 프롬프트를 쓰고, 외주 대신 직접 테스트하며, 보고서 대신 즉각적인 결과물을 만든다. 기획부터 검증까지의 흐름에 지연이 없기 때문에 조직보다 느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다. AI 슈퍼개인을 만드는 것은 특정 툴이 아니라 일의 구조다. 목표를 먼저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AI를 어떻게 배치할지 설계할 수 있는 사람만이 AI의 속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AI는 방향을 정해주지 않는다. 방향 없는 속도는 오히려 혼란을 키운다. 그래서 AI 슈퍼개인은 도구를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를 쓸 맥락과 타이밍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느려지는 현상은 사실 자연스럽다. 문제는 많은 조직이 이를 성장통 정도로 치부한다는 데 있다. AI 시대에 이 느림은 더 이상 감내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다. 실무자가 이틀이면 끝낼 수 있는 일도 보고와 결재를 거치며 몇 주, 몇 달로 늘어난다. 그 사이 시장은 변하고, 고객의 관심은 이동한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모두가 절차를 따랐기 때문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합의를 거칠수록 판단은 평균값에 수렴하고, 책임은 흐려진다. 이 구조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속도이고, 그 다음은 판단의 질이다. 인건비보다 더 큰 비용은 이렇게 흘러가 버리는 시간이다. 그래서 AI 시대의 경쟁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의 싸움에 가깝다.

이 구조적 한계는 결국 ‘고용’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오랫동안 일을 한다는 것을 소속을 가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AI는 개인의 작업 반경을 급격히 넓혔다. 이제 한 사람은 기획, 리서치, 문서 작성, 데이터 정리까지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 이 환경에서 더 이상 많은 인원을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효율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AI 슈퍼개인은 기본 실행을 AI로 확장하고, 부족한 지점에서만 외부와 연결한다. 일이 먼저 정의되고, 그 일에 맞는 사람과 도구가 그때그때 조립된다. 이는 팀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빠르고, 실패의 비용도 작다. 커리어 역시 소속이 아니라 기록과 결과로 증명된다. 무엇을 해결해왔는지가 신뢰가 된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은 결국 자동화라는 질문으로 모인다. AI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경쟁은 쉽게 “얼마나 자동화했는가”로 흐른다. 하지만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오히려 무엇을 자동화하지 않았는가에서 갈린다. 반복적 실행과 정보 정리는 AI가 맡는다. 하지만 방향 설정, 문제 정의, 맥락 판단은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 잘못된 질문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그래서 AI 슈퍼개인은 실행자가 아니라 설계자에 가깝다. 그는 손을 움직이기보다 구조를 그린다. AI와 사람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 협업이 더 나은 해답을 만드는 순간은 언제인지 설계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가치는 직함이나 소속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판단과 남겨진 결과물로 증명된다.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날아오른다. 여기서 말하는 가벼움은 얕음이 아니라, 구조에 묶이지 않고 판단을 중심에 두는 상태다. AI 슈퍼개인의 생존 전략은 더 많은 자동화가 아니라, 자동화 위에 인간의 자리를 정확히 놓는 데 있다.

이 글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으로 남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자동화하려 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만큼은 끝까지 내가 붙잡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AI 시대 개인의 위치를 결정할 것이다.

Heavy Sinks, Light Flies 5편 — AI 슈퍼개인의 생존 전략, 무엇을 자동화하지 않을 것인가

AI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화는 쉽게 자동화 경쟁으로 흐른다. 무엇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지, 어떤 일을 사람 대신 맡길 수 있는지가 중심이 된다. 하지만 이 연재를 마무리하며 분명히 하고 싶은 결론은 하나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얼마나 자동화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자동화하지 않았는가”에서 갈린다.

지금까지 살펴본 레거시 조직의 문제는 단순히 느리다는 데 있지 않았다. 결정 구조가 무겁고, 책임이 분산되어 있으며, 판단이 합의와 보고 속에서 희석된다는 점이 본질이었다. 반면 AI 슈퍼개인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그는 모든 일을 혼자 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판단하고, 필요할 때 AI로 능력을 확장하고, 더 효율적일 경우 다른 개인이나 서비스, 프로젝트 팀과 즉각적으로 협업한다. 중요한 건 ‘고용’이 아니라 ‘연결’이다.

여기서 자동화의 의미는 달라진다. AI 슈퍼개인에게 자동화는 목표가 아니라 도구다. 반복적 실행, 정보 정리, 초안 생성, 데이터 비교 같은 영역은 AI가 맡는다. 하지만 방향 설정, 문제 정의, 맥락 판단은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남긴다.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 이 문제가 지금 중요한지, 그리고 어떤 방식이 맞는지 결정하는 일은 자동화할수록 오히려 위험해진다. 잘못된 질문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AI 슈퍼개인은 실행자가 아니라 설계자에 가깝다. 직접 손을 움직이는 시간보다, 구조를 그리는 시간이 길다. AI를 어떻게 배치할지, 어느 지점에서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지, 협업이 더 나은 해답을 만드는 순간은 언제인지를 설계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가치는 소속이나 직함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판단과 기록된 결과물로 증명된다. 어느 조직에 있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는지가 남는다.

이 변화는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자동화가 빨라질수록 인간의 자리는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인간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해지고 있다.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붙잡을지 결정하는 힘, 기술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설계하는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 연재의 제목처럼,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날아오른다. 여기서 말하는 가벼움은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구조에 묶이지 않고, 판단을 중심에 두고, 필요할 때 연결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AI 슈퍼개인의 생존 전략은 더 많은 자동화가 아니라, 자동화 위에 인간의 자리를 정확히 놓는 데 있다.

다음 편은 없다. 대신 이 글이 하나의 질문으로 남았으면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자동화하려 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만큼은 끝까지 내가 붙잡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AI 시대 개인의 위치를 결정할 것이다.

Heavy Sinks, Light Flies 4편 — 고용에서 협업으로, 일하는 방식이 바뀌는 이유

조직이 느려지는 이유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용’이라는 개념에 닿게 됩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일을 한다는 것을 곧 소속을 가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회사에 들어가고, 팀에 배치되고, 역할을 부여받는 구조 말입니다. 이 방식은 산업화 시대에는 매우 효율적이었습니다. 사람이 곧 생산력이었고, 사람을 묶어두는 것이 곧 경쟁력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I가 등장하면서 이 전제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제 개인은 혼자서도 과거의 팀 단위가 수행하던 일의 상당 부분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획, 리서치, 문서 작성, 데이터 정리까지 AI가 보조하면서, 개인의 작업 반경은 급격히 넓어졌습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드러납니다. 더 이상 ‘사람을 얼마나 많이 고용하고 있느냐’가 일이 잘 돌아간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AI 슈퍼개인이 일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기본적인 실행은 AI를 통해 확장하고, 그 위에서 부족한 지점이 생길 때만 외부와 연결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AI를 활용해 사업 기획서와 마케팅 메시지 초안을 만들고, 실제 광고 집행이 필요해지면 특정 프로젝트에 맞는 퍼포먼스 마케터와 짧게 협업합니다. 개발이 필요하면 풀타임 개발자를 뽑는 대신, 검증된 프리랜서나 서비스형 툴을 선택합니다. 이 협업은 ‘팀을 만든다’기보다 ‘문제를 해결한다’에 가깝습니다.

중요한 차이는 여기 있습니다. 기존 조직은 사람을 먼저 확보하고 그 다음에 일을 배분합니다. 반면 AI 기반 협업 구조에서는 일이 먼저 정의되고, 그 일에 맞는 사람과 도구가 그때그때 연결됩니다. 소유가 아니라 조립에 가깝고, 고정이 아니라 유동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속도가 다릅니다. 의사결정도 빠르고, 실패했을 때의 비용도 훨씬 작습니다.

이 변화는 개인의 커리어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제 실력은 소속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어떤 회사에 다녔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결해봤는지,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협업의 기록, 프로젝트의 결과물, 문제 해결의 흔적이 곧 신뢰가 됩니다. AI 슈퍼개인은 이 기록을 중심으로 다음 기회를 만들어갑니다.

결국 우리는 고용의 시대에서 협업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고정된 자리를 지키는 능력보다, 상황에 맞게 연결되고 조합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동화보다 더 중요해진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AI 슈퍼개인이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이 연재의 긴 생각을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Heavy Sinks, Light Flies 3편 — 왜 느린 조직은 스스로 무거워지는가

조직이 커질수록 일이 느려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다. 문제는 대부분의 조직이 그 느려짐을 “어쩔 수 없는 성장통”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AI 시대에 이 느림은 더 이상 감내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다. 속도의 차이는 곧 생존의 차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조직은 분업과 관료제를 통해 성장했다. 역할을 나누고, 책임을 쪼개고, 의사결정을 위로 올리는 방식은 대량 생산과 안정적인 운영에 매우 효율적이었다. 이 구조 덕분에 조직은 커질 수 있었고, 일정한 품질과 통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무자가 이틀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이 있다. 하지만 그 일은 보고서가 되고, 수정이 붙고, 결재 라인을 오르내리며 “다음 주 금요일”로 밀린다. 그렇게 일은 2주가 되고, 때로는 한 달이 된다. 그 사이 시장은 변하고, 고객의 관심은 이동한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모두가 ‘절차’를 따랐기 때문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구성원이 두 배가 되면, 소통의 복잡성은 네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한 대기업 CEO가 결재를 반려하면 다시 올라오기까지 두 달이 걸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결재를 승인한다고 했다. 그 결정이 옳아서가 아니라,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문제는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구조다.

이 구조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속도’다. 그리고 그 다음은 ‘판단의 질’이다. 합의를 거칠수록 결정은 평균값에 수렴하고, 책임은 흐려진다. 실행보다 내부 설명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조직은 결국 외부 변화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인건비보다 더 큰 비용은, 이렇게 흘러가 버리는 시간이다.

AI 슈퍼개인이 조직을 이기는 이유는 여기 있다.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더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단과 실행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구조에서는 실험이 가능하고, 실패도 빠르다. 반면 조직은 실패를 피하기 위해 검토를 늘리고, 그 검토가 다시 실패를 부른다. 느림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을 키운다.

이제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이 느린 구조를 계속 유지한 채 AI를 도입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툴은 빨라졌지만, 결정 구조가 그대로라면 속도는 결국 조직의 최저 속도로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AI 시대의 경쟁은 기술보다 구조의 싸움에 가깝다.

다음 편에서는 이 느린 구조 이후에 등장하는 변화, 즉 고정된 고용이 아닌 필요할 때 연결되는 협업의 시대를 다뤄보려 합니다. 조직 안에 남는 것이 아니라, 기록과 실행으로 선택받는 개인의 전략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쇼핑몰의 시대에서, AI가 선택하는 시대까지

30년 전 커머스의 디지털 전환은 ‘쇼핑몰의 등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으로 옮겨왔고,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수많은 쇼핑몰 링크가 결과로 나열되었다. 쇼핑몰의 링크가 검색 결과로서 순서대로 제시되는 구조였다. 누가 더 상단에 노출되느냐, 누가 더 많은 광고비를 쓰느냐가 곧 매출과 직결되던 시대였다. 이 시기의 경쟁은 ‘어디에 입점했는가’와 ‘얼마나 잘 보이느냐’의 싸움이었다.

지금 AI 시대의 커머스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용자는 더 이상 상품을 직접 비교하지 않는다. “조카 졸업 선물로 20만 원대, 성향은 조용한 편”처럼 상황을 말하면, AI가 제품을 고르고 결제와 배송까지 이어준다. 검색 결과를 훑는 과정이 사라지고, AI가 브랜드를 ‘호출’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링크가 아니라 신뢰다. AI는 무작위로 상품을 추천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데이터, 리뷰, 재구매 흐름, 고객 반응을 종합해 ‘추천할 만한가’를 판단한다.

이 전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에는 표준 프로토콜이 있다. 과거의 크롤링이 사람의 눈을 대신해 웹을 긁어오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머신과 머신이 API로 직접 통신한다. 재고, 가격, 배송, 리뷰가 실시간으로 연결된다. 이 환경에서는 단순히 예쁜 쇼핑몰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AI가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지 않으면, 아예 선택지에 오르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기업과 브랜드가 준비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AI 검색 환경에서 불리는 존재가 되는 것, 즉 GEO 대응이다. 다른 하나는 프로토콜 기반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구조다. 나아가 브랜드 스스로를 대표하는 ‘브랜드 에이전트’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AI가 고객을 대신해 쇼핑하는 시대에는, 브랜드도 AI와 대화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30년 전 디지털 전환이 ‘쇼핑몰을 만드는 일’이었다면, 지금의 AI 전환은 ‘AI가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로 정리되는 과정’에 가깝다. 클릭을 유도하던 시대에서, 호출되는 시대로. 커머스의 무게중심은 분명히 이동하고 있다.

이커머스 AI 관련 핵심 용어 정리 (20)

  1. GEO (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
    AI 검색 엔진(챗GPT, 제미나이 등)에서 브랜드가 추천되도록 최적화하는 것

  2. UCP (Unified Commerce Protocol)
    구글이 주도하는 커머스 표준 규격. 제품 정보, 재고, 리뷰 등을 통합 관리함

  3. ACP (Agentic Commerce Protocol)
    오픈AI가 주도하는 커머스 표준 규격. 특히 결제와 액션 단계에 집중함

  4. Agentic Commerce
    AI 에이전트가 구매 결정, 결제, 배송 등 쇼핑의 전 과정을 자율적으로 수행함

  5. API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머신끼리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한 통로. 프로토콜 시대의 핵심 통신 수단

  6. Protocol
    머신 간의 통신을 위해 정해진 약속이나 표준 언어

  7. Dynamic Pricing
    상황, 수요, 고객 조건에 따라 실시간으로 가격이 변동되는 시스템

  8. Hyper-Personalization
    고객의 취향, 위치, 예산 등을 분석하여 제공하는 초개인화된 추천 서비스

  9. D2C (Direct to Consumer)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고 브랜드가 고객과 직접 만나 판매하는 방식

  10. Brand Agent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며 자사 제품을 최적으로 추천해 주는 AI 비서

  11. Friction
    쇼핑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나 불편함. AI는 이를 완화하는 역할을 함

  12. Gateway
    사용자가 쇼핑이나 정보를 접하기 위해 처음 통과하는 문 (현재는 AI가 그 역할)

  13. Multi-Modal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 음성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14. Crawling
    봇이 웹페이지를 돌아다니며 텍스트와 이미지를 긁어모으는 기존 정보 수집 방식

  15. Social Proof
    소셜 미디어나 커뮤니티의 리뷰 등 대중의 반응을 통해 얻는 신뢰의 증거

  16. CEP (Category Entry Point)
    소비자가 특정 제품군을 찾게 되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시점

  17. Tipping Factor
    소비자가 여러 제품 중 최종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핵심적인 정보나 요인

  18. 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시스템. AI 에이전트가 이를 고도화함

  19. AX (AI Transformation)
    기업의 비즈니스 구조를 AI 중심으로 전환하는 디지털 전환의 다음 단계

  20. Zero-click
    검색 결과에서 링크를 클릭하지 않고 AI의 답변만으로 쇼핑이 종결되는 현상

감자탕로그 2편. 장모님 국물에서 배운 것

하얀 국물의 시작은 기억이었다

하얀 국물 감자탕의 첫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아내의 기억에서 시작됐다. 어릴 적, 엄마가 자주 끓여주던 하얀 국물 이야기를 들려줬다. 맛있는 고기가 듬뿍 들어간 국물이었고, 네 남매가 함께 먹던 음식이었다고 했다. 자극적이지 않았지만 깊었고, 잡내 없이 고기도 부드러워서 막내까지 잘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정확한 레시피보다 “아이들이 잘 먹었다”는 말이 오래 맴돌았다. 그래서 딸에게도 한 번 먹여보고 싶어 장모님께 물었다. 그 국물의 정체는 특별한 양념이 아니라, 양념을 하지 않은 하얀 국물 감자탕이었다.

집밥에서 확인한 기준

장모님께 부탁해 한 솥 끓여 함께 먹었다. 신선한 강릉 돼지 사골과 목뼈를 푹 고아낸 국물이었다. 마침 아이의 이유식 시기와 맞물려, 그 국물에 뼈고기를 잘게 찢어 먹였는데 아이가 정말 잘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확신이 생겼다. 이건 단순히 ‘순한 음식’이 아니라, 기준이 분명한 음식이라는 생각이었다.

이탈리안 오너셰프로 일하며 나는 늘 재료가 가진 맛을 해치지 않는 방향을 고민해왔다. 소스와 조미료를 덜 쓰고, 맛을 더하기보다는 남기는 쪽을 선택해왔다. 장모님의 국물을 보며 그동안 내가 중요하게 여겨왔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기술을 뽐내는 요리가 아니라,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아는 태도 같은 것들. 그 국물은 맛있는 경험이었고, 동시에 지금까지도 내가 붙들고 가고 있는 좋은 기준을 다시 확인하게 해주었다.

기준은 그대로, 선택지는 넓게

하얀 국물은 아이에게 먼저 맞춰진 음식이었지만, 어른의 식사로도 충분히 성립해야 했다. 그래서 국물은 그대로 두고, 원하면 칼칼하게 즐길 수 있도록 별도의 다데기를 곁들이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더해졌다. 국물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가족 모두가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구조였다.

그때 분명해졌다. 장모님의 국물은 레시피를 알려준 것이 아니라, 기준을 알려주었다는 것을. 자극 없이도 충분히 맛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결정을 밀어준 장면

강릉으로 이사 온 뒤, 솔직히 걱정이 많았다. 다시 식당을 해야 할지, 아니면 중앙시장에서 김밥이라도 팔아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하얀 국물을 먹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정리됐다. 이 음식을 만들어 팔아보자. 그것도 오프라인이 아니라, 처음부터 온라인으로.

해본 적 없는 방식이었고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우리 아이와 조카들이 잘 먹는 모습, 그리고 강릉에는 믿을 만한 로컬 식재료가 많다는 사실이 그 결정을 떠받쳤다. 겁은 있었지만, 기준은 분명했다.

마무리하며

장모님의 국물은 내게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판단의 기준을 남겨주었다.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했다. 이 기준이 이후 하얀 국물 감자탕을 상품으로 옮기는 과정의 중심이 되었다.

왜 이 음식을 만들기로 결심했는지, 그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아이가 잘 먹었고, 어른도 함께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늘 집밥이 있었다. 다음 기록에서는 이 기준을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먹여보며, 어떤 말들이 남았는지를 이어서 정리해보려 한다.

기준이 생기자, 자동화는 늦춰도 된다는 걸 알았다

사업 자동화와 가치 증명에 대한 기록

처음 1인기업을 생각했을 때, 나는 자동화에 꽤 집착했다. 사람을 뽑지 않고도 굴러가는 구조, 버튼 몇 개로 일이 돌아가는 시스템. Make.com, GPT, 각종 툴을 보면서 “이 정도면 AIG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자동화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불안을 줄이고 싶었던 것에 가까웠다. 혼자 일하는 구조에서 가장 무서운 건 일이 끊기는 순간이니까.

그런데 지난 2~3개월 동안 실제로 일을 해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자동화라는 이름으로, 아직 내가 직접 겪고 판단해야 할 일들까지 시스템에 넘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들었다.

첨부했던 문서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시스템형 회사에서는 증분 이익에 6배의 배수가 적용된다는 말. 처음엔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 “이익은 이익이지, 왜 갑자기 6배를 곱하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건 회계의 언어가 아니라 기업가치의 언어였다. 내가 더 열심히 해서 번 돈은 소득이고, 구조가 바뀌어서 매년 반복될 돈은 자산이라는 차이. 자영업형 사업에서 늘어난 이익은 대표 개인의 노동 증가일 뿐이지만, 시스템형 사업에서의 이익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몇 년 치를 묶어 평가받는다. 그게 배수, 멀티플이다.

이제야 문서에 적힌 말이 이해됐다. 자동화의 목적은 편해지는 게 아니라, 이익이 반복 가능하다는 증거를 만드는 것이라는 걸.

그래서 KPI를 다시 보게 됐다. 예전엔 KPI라는 말이 부담스러웠다. 관리받는 느낌, 목표 숫자 같은 인상이 강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KPI는 목표가 아니라 계기판이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이 사업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숫자다. 오늘도 상담이 끊기지 않았는지, 제안 이후 다음 행동이 정리돼 있는지, 내가 빠져도 흐름이 멈추지 않는지.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해졌다.

자동화보다 먼저 필요했던 건 기준이었다. 어떤 일은 사람이 해야 하고, 어떤 일은 반복만 되면 되고, 어떤 판단은 아직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구분. 이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동화는 속도를 내는 게 아니라 방향을 잃는 지름길이었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은 화려하지 않다. 문서 정리하고, 흐름 나누고, 기준을 남긴다. 하지만 이게 쌓이면 자동화는 결과로 따라올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 글은 자동화 성공담이 아니다. 아직도 나는 직접 연락하고, 직접 판단하고, 직접 고친다. 다만 예전과 다른 건 하나다. 이제는 이 일이 자산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버는 돈보다 남는 구조가 있는지를 보게 됐다. 이 변화가, 어쩌면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감자탕 사업의 가장 큰 자동화일지도 모르겠다.

참고 정리: 알렉스 호르모지의 사업 자동화 프레임

  1. 개요
    본 보고서는 알렉스 호르모지(Alex Hormozi)가 제시한 ‘나 없이도 돌아가는 비즈니스’를 구축하기 위한 5단계 시스템과 사업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상세히 분석한다. 진짜 비즈니스는 소유자가 일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 없이도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2. 사업의 진짜 가치: 현금 흐름 vs 자산 가치
    매출 130억, 순이익 26억으로 동일한 두 회사의 예시를 통해 사업 가치의 차이를 설명한다.

구분

첫 번째 회사 (자영업형)

두 번째 회사 (시스템형)

운영 방식

대표가 주 80시간 일하며 모든 업무에 직접 관여

대표의 관여 없이 주식 소유 형태로 운영

개인 수익

세금 50% 공제 후 약 13억 수령

기업 가치로 평가되어 자산화

증분 이익의 가치

6.5억 추가 이익 발생 시 약 3.25억 저축 효과

6.5억 추가 이익 발생 시 약 39억 자산 가치 상승

최종 평가

단순 소득 증대 모델

156억~195억 가치의 자산 모델

  1. 사업 자동화 5단계 시스템

1단계: 업무 목록화 및 시간 연구
자신이 하는 업무를 15분 단위로 기록한다. 엑셀에 수행 업무를 한 단어로 적고, 초록(위임 가능), 노랑(프로세스 필요), 빨강(채용 필요)으로 분류한다.

2단계: 의사 결정 트리 및 KPI 구축
업무를 넘기는 수준을 넘어 직원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든다. 상황별 가이드와 성과 지표를 통해 행동과 결과를 연결한다.

3단계: 레버리지와 3단계 훈련법
섀도우 트레이닝, 감독 하 실행, 독립 지원의 3단계를 통해 오너의 시간을 점진적으로 줄인다. 초기 실력보다 학습 속도를 중시한다.

4단계: A급 인재 및 관리자 채용
사장보다 뛰어난 전문가를 채용한다. 측정 가능한 지표를 질문하는 사람이 진짜 전문가다. 충분한 면접을 통해 패턴 인식을 만든다.

5단계: 마케팅 시스템에서의 오너 분리
오너의 얼굴 없이도 작동하는 7가지 마케팅 소스를 구축한다. 고객 후기, 라이프 사이클 광고, 감정이 담긴 결정적 순간을 활용한다.

  1. 최종 점검 및 결론
    3개월 부재 테스트를 통과해야 진짜 자동화다. 첫 사업이 오너 없이 돌아가지 않는 상태에서의 확장은 리스크만 키운다. 오너가 덜 중요해질수록 비즈니스 가치는 커진다. 진짜 자산은 당신 없이도 성장하는 사업이다.

네이티브 디지털, 네이티브 AI 세대들…

아무리 문법 이론을 공부하고, 유명한 강사에게 발음을 배우고, 각종 자격증을 따도 내 영어 발음과 사고는 끝내 네이티브 미국 사람처럼 되지 않았다. 단어를 더 많이 외우고 표현을 더 익힐수록 나아지긴 했지만, 사고의 속도와 뉘앙스, 그 자연스러움까지는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됐다. 배움의 문제가 아니라, 출발선의 문제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70년대에 태어난 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한가운데를 통과한 세대다. 집 전화에서 삐삐로, 삐삐에서 휴대폰으로, 다시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는 모든 과정을 직접 봐왔다. 컴퓨터의 시초라 불리는 에니악 이야기도 알고, 애플 II로 처음 키보드를 두드리며 디지털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구글 검색을 하고,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자란 아이들과는 결국 속도도, 감각도 같아질 수 없었다. 디지털을 배운 세대와 디지털 안에서 태어난 세대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AI 시대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고 ‘도입’하고 ‘적응’하고 있지만, 곧 태어나거나 이제 막 자라는 아이들은 AI를 이미 존재하는 환경으로 받아들이며 자라게 될 것이다. 이 격차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 하루에 몇 시간을 AI 공부에 쏟고, 사업에 적용하며 나름대로 앞서간다고 해도, 내 아이들은 전혀 다른 개념과 감각으로 진짜 AI 네이티브가 될 것이다.

그래도 오늘의 나는 하얀감자탕 1인기업 김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단순히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다. 나와 가족을 지키는 일이자, 10년, 20년 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준비하는 아빠로서의 책임에 가깝다. 내가 이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 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길이다. 어디까지 데려다 줄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두 딸이 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는 지점, 필요한 곳까지는 함께 가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빠의 역할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