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졸업식 일주일전, 처음으로 어른의 눈물이 나왔다

어릴적 졸업식에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내 졸업식도, 누군가의 졸업식도 그랬다. 어른들은 “이럴 때 우는 거야” 하며 눈시울을 훔쳤지만, 나는 늘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는 쪽이었다. 감격보다는 의례처럼 느껴졌고, 왜 저렇게까지 감정이 올라오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첫째 딸의 졸업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식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눈물이 난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싶다가도, 그보다는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의 밀도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한 번에 보이기 시작했다. 태어났을 때의 얼굴, 처음 걷던 순간, 말이 서툴던 시기, 유치원에 입학하던 날,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3년의 시간들. 아이는 하루하루 자라났을 뿐인데, 어른인 나는 그 모든 장면을 기억이라는 한 덩어리로 동시에 보고 있다. 어른의 눈으로, 어른의 경험으로, 어른의 기억으로 한 아이의 시간을 한꺼번에 마주하는 일. 아마 그게 감격이라는 감정의 정체일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또 수도꼭지 터졌네” 하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나도 같이 웃고 넘겼을 이야기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다르다. 3월에 있을 입학식이 벌써부터 걱정되고, 괜히 마음이 앞서간다. 초보 아빠의 전형적인 증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이 감정만큼은 분명하다. 딸아이가 그저 고맙고, 사랑스럽다. 잘 자라줘서 고맙고,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 졸업식은 아이의 끝이 아니라 어른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면, 아마 그 말은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이번 졸업식에서는 아마, 나도 어른들처럼 조용히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눈물로.

아이에게는 모든 순간이 처음이다, 내 경험은 잠깐만 조용히

오늘 아침은 유난히 정신이 없었다. 출근 시간이 늦어졌는데 아이들은 장난감을 늘어놓고 옷은 입을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지다 보니, 둘째에게 건넨 말에 감정이 실려버렸다. 말로 때렸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소리를 질렀다기보다는, 내 안의 조급함이 그대로 얹혀 나간 말이었다.

다시 숨을 고르고 아이를 달랬다. 결국 어린이집에는 웃는 얼굴로 데려다주긴 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없었던 아침처럼 마무리됐다. 하지만 가게로 오는 차 안에서 한숨이 길게 나왔다. 방금 전의 장면이 계속 떠올랐고, 내 말투 하나에 아이가 느꼈을 감정이 뒤늦게 마음을 건드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던진 말에 감정이 실렸느냐의 여부가 핵심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감정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보다, 그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닿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쪽에 가까웠다. 말은 던졌는데, 그 말이 과연 어디에 머물렀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것 같다. 내가 던진 말이 딸들의 감정의 외골격 위로 떨어져 흘러내리느냐, 아니면 비록 아주 가느다란 한 줄기라도 마음속으로 스며들며 공감으로 남느냐의 차이다. 같은 말이어도, 외부를 튕겨내는 외골격 위에서 미끄러지듯 사라질 수도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음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편에 서서 던지는 말과, 같은 자리에 앉아 공감과 다정함을 유지한 채 건네는 말은 정말 다르다. 전자는 ‘꼰대의 말’로 남기 쉽고, 후자는 느리더라도 변화를 만들어낼 여지를 남긴다.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건 결국 말의 크기가 아니라, 말이 건네지는 위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실은 늘 이상적이지 않다. 애들을 깨우고, 먹이고, 다시 깨워서 옷 입히고, 등원시키는 정신없는 아침 상황에서 매번 좋은 판단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 순간순간에 감정을 완벽히 분리해내는 건 아직 초보 아빠인 나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필요한 건 완벽한 훈육이 아니라, 하루에 30분이라도 아이들을 진심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말로 가르치기보다, 태도를 다시 맞추는 시간 말이다. 그렇게 하루에 30분씩이라도 아빠 연습을 진심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후에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덩킨도넛에 가야 할 것 같다. 도넛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아빠도 계속 배우고 있다”는 마음만은 전하고 싶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단순히 아이를 바르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어른으로 다시 훈육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일인 것 같다. 아이를 가르친다고 생각했던 하루가, 사실은 내가 다시 배우는 하루였다. 꼰대예방 주사…. 좀 아프네. ㅎㅎ

Heavy Sinks, Light Flies — AI 시대, 판단의 주도권은 조직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연속된 글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히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일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가 분명하게 바뀌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조직이 판단하고 개인이 실행했다면, 이제는 개인이 판단하고 조직은 그 판단을 따라가지 못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그 어긋남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 이 연재의 출발점이었다.

송길영 박사가 오래전부터 던져온 질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변화는 늘 기술에서 시작되지만, 실제로 무너지는 것은 구조이고, 가장 늦게 바뀌는 것은 사고방식이라는 문제의식이다. 다만 이 연재에서는 그 논의를 학술적 언어나 거시 담론이 아니라, 현업과 1인기업, 실무자의 시선으로 다시 풀어보고 싶었다. 회의실이 아니라 작업대에서, 조직도가 아니라 실제 판단과 실행의 순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비의 축은 자연스럽게 명확해졌다. 규모와 위계, 역할 분업을 전제로 움직이는 레거시 조직과, 판단을 중심에 두고 AI를 도구로 삼아 빠르게 실행하는 AI 슈퍼개인. 이 둘의 차이는 성실함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결정이 어디에서 끝나는가의 차이다. 누가 더 많이 일하느냐보다, 누가 더 빨리 결정하느냐가 성과를 가르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감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 연재는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관찰된 변화의 방향을 차분히 묶어두는 시도에 가깝다. 조직이 느려지는 이유, 개인이 빨라지는 조건, 고용에서 협업으로 이동하는 흐름, 그리고 자동화의 시대에 끝까지 인간이 붙잡아야 할 영역까지. 각각은 흩어진 생각이었지만, 글로 쓰는 과정에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개의 글을 적는 사이 정리된 하나의 생각을 아래 기록해 둔다.


Heavy Sinks, Light Flies – 1~5편을 묶은 완성편

AI 시대, 일의 주체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AI 시대를 살면서 요즘 가장 자주 떠오르는 생각은, 일의 주체가 분명히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는 조직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개인들이 세상의 흐름을 움직이고 있다. 이 글은 그런 변화의 한가운데를 정리한 기록이다. 단순히 AI 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일하는 방식과 사고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 앞에서 개인은 어떤 위치에 서게 되는지를 짚어보고 싶었다.

과거에는 ‘크다’는 것이 곧 ‘안정적이다’라는 의미였다. 사람 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었고, 규모 자체가 신뢰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조직이 클수록 느려지고, 느려질수록 판단은 늦어진다. AI가 실시간으로 판단과 실행을 돕는 시대에, 레거시 조직의 무게는 더 이상 안전망이 아니라 마찰로 작동한다.

중요한 점은 이 무거움이 개인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사람보다 구조의 관성에 있다. 레거시 조직은 여전히 위계, 보고, 승인이라는 절차 위에 서 있다. 하지만 AI가 초 단위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환경에서, 이 절차는 안정이 아니라 지연 장치가 된다. AI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회의를 통해 하루를 쓰는 구조는 이미 시대와 어긋나 있다.

AI가 만들어낸 가장 큰 변화는 판단 속도의 단축이다. 이제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누가 더 많은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느냐다. 과거에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졌다면, 지금은 판단의 밀도와 실행의 타이밍이 권력이 되었다. 그러나 레거시 조직에서는 이 판단이 위로는 승인, 옆으로는 조율, 아래로는 보고로 분산되며 끊임없이 늦어진다. 그 사이 시장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반면 AI를 활용하는 개인, 이른바 AI 슈퍼개인은 판단의 단계를 압축한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요약해 실행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혼자서 완결할 수 있다. 과거라면 부서 단위 협업이 필요했던 일들이 이제는 개인의 도구 조합으로 끝난다. 더 이상 사람 수가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제 기준은 ‘한 사람이 얼마나 깊고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가’로 바뀌었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진다. 레거시 조직은 위계를 유지하기 위해 보고서, 회의, 평가, 인사 같은 ‘조직을 위한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일의 본질은 시장과 고객에 있지만, 에너지는 내부 운영으로 흘러간다. 반면 AI 슈퍼개인은 결과만 본다. 시장의 반응이 곧 평가이고, 성과는 곧 생존이다. 그래서 그는 시스템을 유지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연결하고, 불필요하면 즉시 덜어낸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분명해진다. AI 슈퍼개인이 빠른 이유는 혼자 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판단이 개인에게 귀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판단이 위로 올라가야 움직이지만, 개인은 판단이 끝나는 즉시 실행으로 넘어간다. 이 작은 차이는 시간이 누적될수록 큰 격차가 된다. AI 슈퍼개인은 회의 대신 프롬프트를 쓰고, 외주 대신 직접 테스트하며, 보고서 대신 즉각적인 결과물을 만든다. 기획부터 검증까지의 흐름에 지연이 없기 때문에 조직보다 느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다. AI 슈퍼개인을 만드는 것은 특정 툴이 아니라 일의 구조다. 목표를 먼저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AI를 어떻게 배치할지 설계할 수 있는 사람만이 AI의 속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AI는 방향을 정해주지 않는다. 방향 없는 속도는 오히려 혼란을 키운다. 그래서 AI 슈퍼개인은 도구를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를 쓸 맥락과 타이밍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느려지는 현상은 사실 자연스럽다. 문제는 많은 조직이 이를 성장통 정도로 치부한다는 데 있다. AI 시대에 이 느림은 더 이상 감내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다. 실무자가 이틀이면 끝낼 수 있는 일도 보고와 결재를 거치며 몇 주, 몇 달로 늘어난다. 그 사이 시장은 변하고, 고객의 관심은 이동한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모두가 절차를 따랐기 때문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합의를 거칠수록 판단은 평균값에 수렴하고, 책임은 흐려진다. 이 구조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속도이고, 그 다음은 판단의 질이다. 인건비보다 더 큰 비용은 이렇게 흘러가 버리는 시간이다. 그래서 AI 시대의 경쟁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의 싸움에 가깝다.

이 구조적 한계는 결국 ‘고용’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오랫동안 일을 한다는 것을 소속을 가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AI는 개인의 작업 반경을 급격히 넓혔다. 이제 한 사람은 기획, 리서치, 문서 작성, 데이터 정리까지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 이 환경에서 더 이상 많은 인원을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효율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AI 슈퍼개인은 기본 실행을 AI로 확장하고, 부족한 지점에서만 외부와 연결한다. 일이 먼저 정의되고, 그 일에 맞는 사람과 도구가 그때그때 조립된다. 이는 팀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빠르고, 실패의 비용도 작다. 커리어 역시 소속이 아니라 기록과 결과로 증명된다. 무엇을 해결해왔는지가 신뢰가 된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은 결국 자동화라는 질문으로 모인다. AI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경쟁은 쉽게 “얼마나 자동화했는가”로 흐른다. 하지만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오히려 무엇을 자동화하지 않았는가에서 갈린다. 반복적 실행과 정보 정리는 AI가 맡는다. 하지만 방향 설정, 문제 정의, 맥락 판단은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 잘못된 질문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그래서 AI 슈퍼개인은 실행자가 아니라 설계자에 가깝다. 그는 손을 움직이기보다 구조를 그린다. AI와 사람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 협업이 더 나은 해답을 만드는 순간은 언제인지 설계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가치는 직함이나 소속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판단과 남겨진 결과물로 증명된다.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날아오른다. 여기서 말하는 가벼움은 얕음이 아니라, 구조에 묶이지 않고 판단을 중심에 두는 상태다. AI 슈퍼개인의 생존 전략은 더 많은 자동화가 아니라, 자동화 위에 인간의 자리를 정확히 놓는 데 있다.

이 글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으로 남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자동화하려 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만큼은 끝까지 내가 붙잡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AI 시대 개인의 위치를 결정할 것이다.

네이티브 디지털, 네이티브 AI 세대들…

아무리 문법 이론을 공부하고, 유명한 강사에게 발음을 배우고, 각종 자격증을 따도 내 영어 발음과 사고는 끝내 네이티브 미국 사람처럼 되지 않았다. 단어를 더 많이 외우고 표현을 더 익힐수록 나아지긴 했지만, 사고의 속도와 뉘앙스, 그 자연스러움까지는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됐다. 배움의 문제가 아니라, 출발선의 문제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70년대에 태어난 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한가운데를 통과한 세대다. 집 전화에서 삐삐로, 삐삐에서 휴대폰으로, 다시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는 모든 과정을 직접 봐왔다. 컴퓨터의 시초라 불리는 에니악 이야기도 알고, 애플 II로 처음 키보드를 두드리며 디지털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구글 검색을 하고,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자란 아이들과는 결국 속도도, 감각도 같아질 수 없었다. 디지털을 배운 세대와 디지털 안에서 태어난 세대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AI 시대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고 ‘도입’하고 ‘적응’하고 있지만, 곧 태어나거나 이제 막 자라는 아이들은 AI를 이미 존재하는 환경으로 받아들이며 자라게 될 것이다. 이 격차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 하루에 몇 시간을 AI 공부에 쏟고, 사업에 적용하며 나름대로 앞서간다고 해도, 내 아이들은 전혀 다른 개념과 감각으로 진짜 AI 네이티브가 될 것이다.

그래도 오늘의 나는 하얀감자탕 1인기업 김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단순히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다. 나와 가족을 지키는 일이자, 10년, 20년 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준비하는 아빠로서의 책임에 가깝다. 내가 이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 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길이다. 어디까지 데려다 줄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두 딸이 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는 지점, 필요한 곳까지는 함께 가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빠의 역할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부가세 신고 1시간 컷, 엉엉엉 AI님 저를 가지세요. ㅠㅠ

정말 어이가 없었다. 부가세 자료 수집부터 신고까지, 1시간도 안 걸렸다. 그것도 방금 검색해서 알게 된 앱 하나로 말이다.

사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세무기장비를 아껴보겠다고 세무 앱으로 셀프 신고를 해왔다. 거의 10년은 된 것 같다. 앱을 써도 세법은 늘 어렵고, 인터페이스는 왜인지 항상 윈도우에만 최적화돼 있었다. 신고 기간만 되면 며칠 전부터 마음이 무거워지고, 당일에는 마감 시간까지 온갖 짜증을 참고 견디는 게 연례행사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 짜증을 못 참고 말았다. “이 정도면 인공지능으로 해주는 서비스 하나쯤은 있지 않나?” 반쯤 투덜대며 검색을 했고, 그렇게 어떤 서비스를 하나 찾아냈다.

이건 뭐지? 복잡한 카드사, 은행, 결제대행사 세팅도 필요 없고 그냥 사업자 등록하고 버튼 하나 누르니까 세무서에 이미 신고돼 있던 각종 부가세 자료들이 쑥 들어왔다. 매입 자료도 거의 다 있었고, 딱 하나 빠진 게 내 신용카드였다. ‘아… 엑셀 각이네’ 각오하고 현대카드, 삼성카드 자료를 업로드했더니… 끝? 끝이라고?

순간 진심으로 중얼거렸다. “오오오 AI님… 저를 가지세요…” 😭

오늘이 하필 부가세 신고 마지막 날이었다. 오전에는 아내 차 타이어 문제로 정신없었고, 오후에는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서 병원까지 다녀왔다. 일은 밀리고, 머릿속에서는 ‘오늘 밤샘 각이구나’ 하고 각오를 하고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이 세무 관련 AI님의 은총 덕분에 12시도 넘기지 않고 퇴근할 수 있게 됐다.

집에 가는 길에 딱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세무사들… 이제 큰일 난 거 아닌가?”

현대차 노조 얘기처럼,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훅 바뀌는 순간이 이런 건가 싶었다. 그리고 곧이어 드는 생각 하나 더. “이러다 나도?”

웃기면서도,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편해졌다는 감탄 뒤에는 늘 같은 질문이 따라온다. 이 변화는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밀어낼까. 오늘은 분명히 내 편이었지만, 내일도 그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오늘은… 부가세 신고 끝. 이건 인정이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아빠의 단상

나도 나름대로 AI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생존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건 단순히 내 사업을 위한 노력만은 아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한 공부이기도 하다. 기술이 이렇게 빠르게 일상을 바꾸는 시대에, 지금의 선택과 태도가 아이들에게 어떤 풍경을 남기게 될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마음이 복잡해졌다. 복수의 회사에 합격해 골라서 갔던 시절로 상징되던 스탠퍼드 졸업생들의 취업 상황이, AI의 영향으로 신규 채용이 줄어들며 취업률이 50%에 겨우 미친다는 내용이었다.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 변화는 이미 내 문제였고, 동시에 이제 자라나는 두 딸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변화는 인간과 AI의 대결이라기보다는, AI를 잘 다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격차에 가깝다고 느낀다. 거대한 조직과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큰 조직조차 AI의 도움을 받아 더 작고 빠른 단위로 쪼개지는 과정이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판단과 실행의 주체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더 두 눈을 크게 뜨게 된다.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계속 묻고 있다. 이 변화의 한복판에서 도망치기보다는, 이해하려 애쓰는 쪽을 택하고 싶다.

완벽한 답은 아직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만은 필요하다는 것. 나와 가족이 이 변화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오늘도 천천히 공부하고 있다.

일이 많아 보일 때, 방향을 먼저 본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To Do 리스트 앱을 열었다. 마음 복잡할 때에는 안과 밖을 청소하는 게 최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일이 쌓이는 경우가 줄어들어 마음이 가벼웠는데, 오랜만에 ‘프로젝트’ 폴더를 열어보니 카테고리만 10개, 그 아래에 프로젝트가 30개가 넘었다. 순간 멈칫했다. ‘앗, 내 집중력이라는 자원이 여기서도 새고 있었구나.’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에게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이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업무의 갈피를 잡지 못했을 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의 방향이 잡혔을 때다. 두 경우 모두 공통적으로 일이 많아 보인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속성은 완전히 다르다.

방향을 잡지 못한 경우에는 해야 할 일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중요한 것 같고’ 하면서 일의 카테고리가 끝없이 분화된다. 하지만 정작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 없다. 반대로, 방향이 명확해진 경우에는 해야 할 일의 수가 줄어든다. 업무가 가지치기 되지 않고, 꼭 필요한 일들만 남는다. 프로젝트의 골격이 잡히면 일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정리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다. 방향이 확실해질수록 단위 업무의 깊이와 밀도가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같은 시간을 들여도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겉으로 보기엔 일의 양이 줄어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각의 방향’이 한 점으로 모이면서 에너지가 한곳에 집중된다.

그래서 오늘은 작은 실험을 해봤다. GTD(Getting Things Done) 방식의 기본 원칙을 응용해 2분 안에 해결 가능한 업무를 즉시 처리하고, 시의성과 중요성이 떨어지는 항목은 과감히 삭제했다. 오래된 창고를 정리하듯, 프로젝트 폴더를 하나씩 닫아가며 마음속의 먼지를 털어냈다.

결과는 의외로 시원했다. 무언가를 더한 게 아니라 덜어냈을 뿐인데, 머릿속이 훨씬 또렷해졌다. 해야 할 일의 ‘갯수’가 아니라 ‘방향’을 관리해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일은 많아도 괜찮다. 단, 그 일들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때만 말이다.

뭐든 그냥 늘어놔도 사는덴 지장없어 보이지만 청소하면 상쾌해지고 가벼워지는 경험이 또 쌓였다. 오늘도 화이팅!

자동화로 회사를 만들려던 시도에서, 운영으로 회사를 다시 세우기까지

감자탕 브랜딩OS v1.0 → v1.5 전환 기록

이건 감자탕을 만드는 한 명의 사장이 다시 1인기업으로 돌아오며 겪은 변화의 기록이다. 한때는 기술과 자동화를 중심으로 회사를 세우려 했고, 지금은 운영과 판단을 중심으로 회사를 다시 세워가고 있다. 성과를 말하려는 글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 믿고 있었는지를 정리해두려 한다.

브랜딩OS v1.0의 출발점

브랜딩OS v1.0의 전제는 단순했다. “1인기업은 자동화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 가능한 한 많은 일을 시스템에 넘기고 싶었다. GPT로 사고를 돕고, Make.com으로 업무를 연결하고, 콘텐츠와 메시지를 한곳에서 관리하는 구조까지 만들었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회사를 꿈꿨다. 일의 목적이 ‘덜 하기’로 맞춰져 있었던 셈이다.

운영이 드러낸 현실

하지만 실제로 운영을 시작하자 곧 한계가 보였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을 자동화하려 했고, 경험이 필요한 판단까지 시스템에 맡겼다. 결과적으로 자동화가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관리해야 할 일’을 하나 더 늘리는 꼴이 됐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타이밍이었다. 구조가 흔들리는 상태에서 자동화는 해결책이 아니라 부담이었다.

브랜딩OS v1.5로 바뀐 기준

v1.5에서 달라진 건 ‘자동화에 대한 태도’였다. 자동화를 목표로 두지 않고 결과로 두기로 했다. 판단이 반복되고 운영이 안정될 때만 자동화가 의미를 갖는다는 기준을 세웠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 v1.0은 자동화를 먼저 떠올렸고, v1.5는 운영과 판단을 먼저 떠올린다.
– v1.0에서 자동화는 목표였고, v1.5에서는 결과다.
– v1.0은 시스템 중심, v1.5는 판단 중심이다.
– v1.0의 나는 설계자였고, v1.5의 나는 운영자다.
– v1.0은 기술에서 시작했고, v1.5는 경험에서 출발했다.

결국 v1.5는 기존 구조를 부정한 게 아니라, ‘자동화를 견딜 수 있는 바닥’을 다시 다지는 과정이었다.

머릿속의 회사와 현실의 회사

머릿속의 회사는 완벽했다. 콘텐츠는 자동으로 생성되고, 메시지는 한 번에 분기 처리되며, 대시보드로 모든 게 관리되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고객과 매일 대화해야 했고, 채널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영업과 상담은 자동화가 아니라 타이밍과 감각의 문제였다. 결국 깨달았다. 회사는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판단의 연속으로 유지된다.

구조조정이 필요했던 순간

이 감각은 GPT 프로젝트 안의 대화창을 정리하면서 더 분명해졌다. 역할이 명확하지 않으면 사고가 섞이고, 기준 문서와 실험 문서가 뒤엉키면 판단이 흐려진다. 기술이 위로 올라갈수록 오히려 결정은 느려졌다. 그래서 다시 구조를 짰다. 운영 헌장, 브랜딩OS, 브랜드 기준, SSOT(채널 언어), 전환 구조, 고객 감정. 이 순서를 고정하자 질문이 달라졌다. “이걸 어떻게 자동화할까?” 대신 “이 판단은 어디 기준에 속하는가?”

다음 스텝, 그리고 지금의 기준

이제는 일부러 자동화를 미루고 있다. 사람이 더 잘하는 일, 반복이 부족한 일, 기준이 불명확한 일은 시스템에 넘기지 않는다. 그 대신 나 자신에게 묻는다.

이 업무는 충분히 반복되었는가?
기준이 문서로 정리되어 있는가?
자동화를 붙이면 정말 일이 줄어드는가?

지금의 결론은 단순하다. 1인기업의 강점은 자동화가 아니라, 판단을 빠르게 고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갖는 것이다. 자동화는 그다음이다.

마무리

브랜딩OS v1.5는 기술적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사고의 위치가 이동한 기록이다. 설계자에서 운영 판단자로, 머릿속 회사에서 현실의 회사로. 감자탕을 다시 끓이기 시작하면서 얻은 이 전환은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될 것이다.
다만 방향만큼은 확실하다. 먼저 운영이 단단해지고, 그다음에 자동화가 따라온다.

‘의심의 연속’이 아니라, ‘믿음의 연습’ — 3km를 넘기까지

오늘 마음의 벽인 2km를 깨고, 드디어 3km를 뛰었다. 숫자만 보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나에게 이건 작은 혁명에 가까웠다. 2km를 넘기 전까진 늘 똑같은 패턴이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멈췄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내일 더 뛰면 되잖아.” 그렇게 합리화하며 멈추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나는 나를 너무 의심하며 달렸다. 이 거리쯤은 어렵다고, 내 체력이 거기까지는 안 된다고. 그런데 오늘 깨달았다. 그 과정은 ‘의심의 연속’이 아니라, ‘믿음의 연습’이었다는 걸.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실제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걸 느꼈다.

오늘 처음으로 3km를 완주했다. 앞으로는 이 거리와 또 싸워야 한다. 할 수 있을까,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그만둬도 괜찮지 않을까 — 이런 생각들이 다시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과정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 치열함이 내 일상에 필요한 감각이라는 걸 안다.

나는 운동을 하며 ‘치열함’을 다시 배운다. 단순히 목표를 향해 가는 게 아니라, 내 안의 한계를 관찰하고 대화하는 시간이다. 오늘 3km를 넘겼지만, 언젠가 4km, 5km로 나아갈 것이다. 그때마다 또 멈추고, 의심하고, 다시 뛰겠지.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결국 나를 믿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걸 안다.

3km는 숫자가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하나의 증거였다.

직원이 없는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했다

오늘은 겉으로 보기에 조용한 하루는 아니었습니다. 업무 시간에는 새로 시작한 네이버 공동구매 건으로 꽤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제안 내용을 확인하고, 일정과 조건을 다시 맞추고, 이 흐름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를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그려봤습니다. 다시 1인기업으로 돌아온 뒤라 이런 판단 하나하나가 모두 제 몫이라는 사실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일은 일대로 흘러갔습니다.

오후가 되자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을 픽업하고,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는 시간입니다. 하루 중 가장 정신없는 구간이지만 동시에 가장 분명한 기준이 생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해야 할 일은 단순하고 판단은 즉각적입니다. 저녁을 마치고 아이들을 재운 뒤, 잠시 아파트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머리가 복잡해서 잠깐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곳에서 노트북을 열고, 내가 운영 중인 프로젝트 안의 ‘대화창 구조’를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팀처럼 나눠둔 대화창들, 역할별로 붙여둔 이름들, 한때는 중요했지만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채팅들.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디지털 정리가 아니라, 회사 구조조정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예전의 나는 자동화를 먼저 믿었습니다. Make.com, 시스템, 미래형 구조를 만들어두면 일이 그 안으로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브랜딩OS도, 조직 구상도 앞서 설계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두세 달 동안 실제로 장사를 다시 해보며 느낀 건 달랐습니다. 자동화보다 중요한 건 지금 당장 매출이 끊기지 않게 만드는 운영의 흐름이었습니다. 쓰지 않는 부서, 겹치는 역할, 기준이 불분명한 팀은 오히려 판단을 느리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결국 결정을 했습니다. 대화창을 ‘많이 쓰는 것’ 기준이 아니라, ‘다시 판단하지 않게 만드는 것’ 기준으로 재편했습니다. 핵심 판단은 CORE로, 지나간 판단의 흔적은 ARCHIVE로, 실행은 RTB로 옮겼습니다. 역할이 애매한 대화창은 없애거나 흡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구조조정이란 사람을 자르는 일이 아니라, 역할을 명확히 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현실의 구조조정과 다른 점도 있었습니다. 짐을 싸야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는 아팠지만, 마음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리할수록 가벼워졌습니다. 회사도, 1인기업도 본질은 같았습니다. 조직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기준 없이 쌓아두기 때문이었습니다. 자동화는 해결책이 아니라 결과였습니다. 구조가 반복되고 판단이 안정되면, 그 다음에야 자동화가 의미를 갖습니다. 이건 지난 몇 달 동안 몸으로 얻은 결론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무언가를 더 만들기 전에 먼저 묻습니다. 이 역할은 꼭 필요한가. 이건 지금 굴러가는 흐름을 돕는가, 아니면 방해하는가. 그날은 대화창 몇 개를 정리했을 뿐이지만, 체감상으로는 회사를 다시 정리한 하루였습니다. 구조조정은 끝이 아니라, 다시 흔들리지 않기 위한 준비라는 것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직원이 없는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한 날이었습니다.